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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유교의 ‘예(禮)’가 불안한 사회에 주는 위안

by 온리나1115 2025. 4. 9.

유교의 ‘예(禮)’가 불안한 사회에 주는 위안



1. 예(禮)를 다시 말해야 하는 이유
오늘날 우리는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다. 고용의 불안정, 가속화되는 기술 변화, 정치적 양극화, 인간관계의 붕괴, 정체성의 혼란 등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끊임없는 긴장과 두려움을 안깁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은 점점 더 감정적으로 날카로워지고,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공동체 속 연대보다 자기보호본능을 우선하게 됩니다.

이런 불안의 시대에 유교적 전통, 그중에서도 ‘예(禮)’를 말하는 것은 다소 낡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불안 속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선택해야 할까? 그리고 유교의 ‘예’는 과연 그 물음에 답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은 ‘예’라는 유교적 개념이 단지 의례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다듬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삶의 기술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예가 오늘날의 불안한 사회에 어떤 심리적 위안과 윤리적 기준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철학적으로 성찰해 봅니다.

 


2. 예(禮)의 유래와 유교에서의 중심적 위치
1) ‘예’의 어원과 의미
‘예(禮)’는 본래 제사 의식과 관련된 단어였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과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를 통해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 과거와 현재를 연결했다. 그 제사의 절차와 마음가짐을 ‘예’라 불렀고, 점차 인간 사회의 모든 관계 속에서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예는 겉으로 보기에 형식과 절차를 강조하는 개념이지만, 그 근저에는 ‘존중’, ‘조율’, ‘배려’라는 윤리적 감정이 자리한다.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이는 단지 억제나 억압이 아닌, 인간 내면의 질서를 위한 자기 절제와 상대 존중의 태도다.

2) 유교에서의 예 - 사람됨의 기본 조건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유교 사상가들은 예를 사람됨의 핵심으로 보았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고, 감정은 자칫 무질서와 갈등을 낳기 쉽다. 예는 그러한 감정을 다듬고 절제하여,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다. 유교에서 예는 단지 규범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적 연습이었다.

공자는 “군자는 예로써 자신의 감정을 제어한다”고 말한다. 이는 감정을 억누르라는 뜻이 아니라, 감정이 자기중심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공감과 절도의 틀 속에서 다스리라는 뜻이다. 예는 삶을 아름답게 하는 윤리적 형식이며, 혼란을 조율하는 관계의 기술이다.

 


3. 불안한 시대, 왜 예가 필요한가?
1) 관계의 불안정성과 감정의 무질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피로’를 느낀다. 언제 어떻게 오해를 살지 모르고, 감정 표현이 왜곡되어 전해지며, 갈등은 빠르게 확산한다. 이러한 관계 피로는 결국 자신을 숨기거나 철벽을 치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공동체의 해체를 불러온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감정의 억제가 아니라 ‘질서 있는 표현’이다. 예는 타인의 입장을 미리 고려하고, 나의 감정을 정제하여서 관계의 언어로 바꾸는 힘을 준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말라”는 말은 유교적 예의 중요한 원칙이다. 말의 절제는 상대에 대한 예이고, 감정의 통제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예는 곧 마음의 언어다.

2) 공공성과 사적 영역의 혼란
SNS와 같은 디지털 환경은 공적 공간과 사적 감정의 경계를 허물었다. 우리는 친구, 가족, 상사, 낯선 이들과 동시에 연결되며, 각기 다른 관계의 규범을 한 공간에 뒤섞는다. 이에 따라 갈등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확산한다.

예는 공간에 따라,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적절함’을 가르친다. 공자는 말한다. “효는 집에서 행하고, 충은 나라에서 행한다.” 즉, 관계의 상황성과 질서를 파악하여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예의 핵심이다. 현대 사회는 이 적절한 선을 잃었고, 그 결과 모든 관계가 불편해졌다. 예는 이 선을 복원하는 힘이다.

 

 

4. 예와 감정의 철학: 억제 아닌 조율
1) 감정 없는 인간은 없다
감정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그러나 감정은 그 자체로 진실하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분노가 언제나 정의롭지 않듯, 사랑도 항상 선하지 않다. 유교는 감정을 없애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감정적 존재임을 인정한 위에서, 그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고 표현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예는 감정이 사회적 언어로 번역되는 윤리적 형식이다. ‘예’가 없다면 감정은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상대를 해치게 된다. 반면 예를 통해 감정은 ‘표현된 진심’이 되어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다. 공자는 “슬플 때는 슬퍼하되 예를 잃지 말라”고 했다. 이는 감정 자체보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관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통찰이다.

2) ‘예’를 통한 자아 성찰과 공동체 감각
예는 타인을 위한 규범이지만, 동시에 자기를 성찰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내가 지금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말은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예는 나의 감정에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나와 타인의 경계를 선명히 하며,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다듬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예는 공동체 감각을 회복시키는 도구다. 나만 옳고, 내 감정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예를 지킬 때, 우리는 단순히 남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 속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5. 예와 일상의 실천: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구체적 방식
1) 말하기의 예
불안한 시대일수록 말의 책임이 커진다. 상대방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상황인지 고려하지 않은 채 쏟아낸 말은 오해를 낳고, 신뢰를 무너뜨린다. 예는 말을 정제하는 힘이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을 알고,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 마음을 실어 말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예의 말하기다.

2) 행동의 예
요즘은 일상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무례와 다르다. 줄을 설 때, 문을 열 때, 상대방을 마주칠 때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단지 예의가 아니라, 불안을 줄이는 매너다. 정해진 형식은 때로 불편하지만,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예는 일상의 불확실성에 질서를 부여한다.

3) 온라인에서의 예
디지털 공간에서는 감정의 필터가 사라지기 쉽다. 댓글, 메시지, 피드백 등에서 우리는 자주 무례해진다. 그러나 예는 오히려 이러한 무형의 공간에서 더 강력하게 요구된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도 존중을 표현하고, 차분한 언어로 의견을 나누며, 사적인 판단을 공적 공간에 끌어들이지 않는 것.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예이다.

 


6. 예의 현대적 재해석: 낡은 가치에서 새로운 윤리로
1) 예는 억압이 아니다: 자유와 절제의 공존
현대인은 종종 예를 자유를 억누르는 규범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자유란 방종이 아니다. 절제 속에 깃든 자유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할 때 가능하다. 예는 ‘하지 말라’는 금지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안내하는 지침이다.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선택의 지혜다.

2) 개인주의 시대의 예
개인주의가 강화된 시대일수록 예는 더욱 중요해진다.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고, 자신의 감정을 자율적으로 조율하며, 공동체 안에서 조화롭게 존재하는 방식은 개인의 품격을 높인다. 유교적 예는 집단주의의 억압이 아니라, 개인의 도덕적 완성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

3) 다원 사회에서의 예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문화, 언어, 가치관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예’는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 타문화에 대한 민감성과 존중을 실천하는 윤리적 태도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충돌 없이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예’를 배워야 한다.

 


7. 온리나의 생각 더하기 - 불안의 시대, ‘예’로 마음을 다스리다
유교의 ‘예’는 낡은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질서이며,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관계의 온도를 조절하는 심리적 안전장치다. ‘예’는 일상의 불안정 속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식이며,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보이지 않는 토대다.

우리가 예를 회복할 때, 단절된 인간관계는 다시 이어지고, 상처받은 마음은 위로받으며, 혼란스러운 사회는 조금씩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를 실천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바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