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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도가 우주를 설명하는 방식 -도(道)의 본체성과 생성 원리

by 온리나1115 2025. 4. 25.

도가 우주를 설명하는 방식 -도(道)의 본체성과 생성 원리

<목차 > 

  • 도(道)는 만물의 근원입니다
  • 도는 형체가 없습니다
  • 도는 시공을 초월하여 스스로 존재합니다
  • 도는 만물 속에 내재합니다
  • 무위자연(無爲自然)
  • 만물의 생성
  • 물극필반(物極必反)

 

도(道)는 만물의 근원입니다

도가 사상은 우주론, 인간론, 인식론, 수기론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일관된 철학적 체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도가 사상은 중국 철학사에서 가장 먼저 체계적인 우주론을 제시한 사상으로 평가받습니다.

 

1) 노자는 당시 일반적으로 믿어지던 주재자로서의 하늘, 즉 상제(上帝)의 개념을 부정하고, 도(道)를 우주 만물의 궁극적 근원으로 제시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기조는 양주와 열자를 거쳐 장자에 이르러 하나의 사상적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노자』에서는 도라는 단어가 총 76회 등장하지만, 그 의미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유교에서는 도를 보편적 법칙, 즉 천도(天道) 또는 도덕적 규범인 인도(人道)로 해석하는 반면, 노자는 도를 만물의 근원이자 존재의 근거가 되는 실제로 이해합니다.

노자는 “도는 텅 비어 있으나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으며, 그윽하고 심오하여 만물의 근원인 듯하다”(『노자』 제4장)고 말하였고, “도는 하느님보다 먼저 있었던 것 같다”(같은 장)고 하며, “천지 사이는 풀무와 같아 비어 있으면서도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풍성해진다”(제5장)라고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주석가 왕필은 “만물은 비어 있는 것(虛)에서 생겨나며, 움직임은 머무름에서 비롯된다. 결국 모든 것은 다시 허무함과 정적 상태로 회귀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이처럼 만물의 생성과 변화는 비어 있음(무)과 정지됨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2) 장자는 이러한 노자의 도 개념을 계승하여, 도는 형체는 없지만 실재하는 것이며, 우주 만물의 궁극적 기원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도는 스스로 존재의 근거를 지니고 있으며, 천지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그것은 귀신이나 하느님에게 신령함을 부여하고, 만물을 생성하게 한다”(『장자』 「대종사」)고 서술하였습니다. 도는 감각적 인식의 범주를 초월하지만, 자율적으로 존재하며, 우주 만물을 창조·변화시키는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도는 형체가 없습니다

 

도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적 인식으로는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됩니다.

 

1) 노자는 “보려 하여도 볼 수 없으므로 이를 ‘평탄함’이라 하고, 들으려 하여도 들을 수 없으므로 ‘희미함’이라 하며, 잡으려 하여도 잡을 수 없으므로 ‘미묘함’이라 한다. 이 세 가지는 따로따로 구분할 수 없으며,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노자』 제14장)고 하였습니다. 또한 “도는 오직 황홀하고 황홀할 뿐이다. 그 가운데 형상이 있고, 그 가운데 정기(精氣)가 있다”(제21장)고 하였습니다.

즉, 도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기(氣), 곧 에너지와 같은 존재이며, 특정한 형상이나 구조를 가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2) 장자 역시 도는 형체가 없으므로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도는 존재하지만 의지가 없고 형체도 없다.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지만, 손으로 주고받을 수는 없으며, 눈으로 볼 수도 없다”(『장자』 「대종사」)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태초에는 무(無)가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하나가 생겨났다”(「천지」), “도는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므로, 만약 들리거나 보이거나 말로 설명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지북유」)라고 말하였습니다.

 

도는 시공을 초월하여 스스로 존재합니다

1) 노자는 도가 시공을 초월한 존재로서,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맑고 있는 듯하나, 그 출처를 알 수 없으며, 누구의 아들인지도 모른다”(『노자』 제4장), “혼돈에서 형성된 어떤 것이 천지보다 먼저 있었다”(제25장)고 하였습니다. 또한, “적막하고 쓸쓸하도다! 홀로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이어져 있으면서도 다함이 없다”(각각 제25장, 제6장)고 말합니다.

 

2) 장자도 도는 스스로 존재하는 절대적 실재이며,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도는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나, 만물은 생성과 소멸이 있다”(『장자』 「추수」), “도는 하늘 위에 있으나 높다고 하지 않고, 땅 아래에 있으나 깊다고 하지 않으며, 하늘과 땅보다 앞서 존재하였으나 오래되었다고 하지 않는다”(「대종사」)고 말합니다.

 

3) 곽상은 우주 만물이 어떤 신적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관념을 부정하며, “사물은 각각 스스로 생성되며, 다른 어떤 존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장자주』 「제물론」)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조물주는 없다. 사물은 각자가 스스로 생성된 것이다”라고 강조하였으며,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은 다른 사물에 의해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사물들 간의 상호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도는 만물 속에 내재합니다

1) 노자는 도가 만물 속에 함께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도는 티끌 속에 있다”(『노자』 제4장), “도는 가지 않은 곳이 없고, 위태롭지 않기에 천하 만물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제25장)고 하였습니다. 도와 만물은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도는 만물로 생성되며, 만물은 도로 돌아간다고 이해됩니다.

 

2) 장자는 도, 즉 기(氣)는 만물 속에서 작용하며,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천하 만물은 하나의 기로 통한다”(『장자』 「지북유」)고 하였으며, 도는 땅강아지, 개미, 잡초, 기왓장, 심지어 똥과 오줌에도 깃들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도는 미분화된 혼돈 상태의 무형적 존재로서 우주 전역에 충만하며, 우주의 근원적 실체이자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순환의 원리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도가 사상은 도(道)를 우주 만물의 근원적 존재로 설정할 뿐 아니라, 이 도로부터 만물이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하는지를 설명합니다.

 

1) 노자는 도가 무위자연의 기능을 통해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킨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도는 언제나 일부러 하려 하지 않지만 이루지 못함이 없다”(『노자』 제37장), “오직 도만이 빌려주고 또한 이루게 한다”(제41장)고 말합니다. 도는 인위적 작위가 없으면서도 만물을 생성하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조작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도는 인위적인 작용 없이 자연스럽게 만물의 생성을 유도합니다.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노자』 제25장)고 하였기에, 이를 무위자연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2) 장자 역시 도의 무위자연적 기능을 강조합니다. 그는 “하늘은 하려 하지 않음으로 맑고, 땅도 하려 하지 않음으로 평온하다. 이 둘의 하려 하지 않음이 서로 어우러져 만물이 생성된다. 만물은 모두 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번성한다”(『장자』 「지락」)고 하였습니다.

또한 “지극한 사람은 일부러 하려 하지 않으며, 위대한 성인은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이는 천지 만물의 변화 원리를 통달하였기 때문이다”(「지북유」)라고 하여, 무위자연의 삶이 도와 일체가 되는 삶임을 역설합니다.

 

3) 곽상은 이러한 무위사상을 명확히 해석하며, 무위란 본성에 맡기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하려 하지 않음’이란 단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본성에 따라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발은 스스로 걸을 수 있게 하고, 손은 스스로 잡을 수 있게 하며, 귀와 눈 또한 제 기능을 따르도록 하라”(『장자주』 「인간세」)고 하였습니다.

곽상은 또한 훌륭한 마부가 말의 본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맡겨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천리마든 둔한 말이든 그 성향에 맡기면 자기 능력대로 움직이고, 성품도 온전히 보존된다”고 하여, 무위란 곧 존중과 자율을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운 질서임을 강조합니다.

 

만물의 생성

도가 사상은 도가 움직이고 변화하여 음과 양의 두 기(氣)를 낳고, 이 둘이 결합하여 만물을 생성하며, 결국 모든 존재는 다시 도, 곧 무(無)로 되돌아간다고 봅니다.

 

1) 노자는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노자』 제40장)고 하였습니다. 또한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으며,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등에 업고, 양을 가슴에 안으며, 충기(沖氣)로 조화를 이룬다”(제42장)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무 → 유 → 하나 → 둘(음양) → 셋(조화) → 만물의 순서로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명되며, 이 가운데 충기(沖氣)는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는 에너지로서, 만물 생성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노자는 “도는 낳아주고, 덕은 길러주며, 물은 형체를 갖추고, 세는 형국을 형성한다”(제51장)고 하여, 도(道)에서 비롯된 덕(德)이 만물에 생명과 본성을 부여하고, 각자의 모습과 성질을 형성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2) 장자는 도, 곧 기(氣)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변화하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역동적 원리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천하 만물은 오르고 내리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처음과 끝이 고정되지 않는다”(『장자』 「지북유」), “사람은 기가 엉켜 생겨나며, 흩어지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지극한 음기는 고요하고, 지극한 양기는 활발하게 움직이며,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 만물을 생성한다”(「전자방」)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는 하늘의 양기와 땅의 음기가 결합하여 생명을 이루고, 다시 분해되어 본래의 무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장자는 도로부터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태초에는 무만 있었다. 거기서 하나가 생겨났고, 그것은 덕(德)이라 하며, 형체 없는 것이 점차 형체를 이루고, 정신과 법칙을 갖추게 되며, 이 상태를 성(性)이라 한다. 성을 닦으면 덕이 지극하게 되며, 결국 처음의 무와 다시 하나가 된다”(「천지」)고 하였습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 만물은 끝에 이르면 되돌아갑니다

1) 노자는 도의 작용이 무위자연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그 속에는 항상성과 되돌아감의 법칙, 곧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원리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무거운 것은 가벼움의 근본이며, 고요함은 움직임의 주재자이다”(『노자』 제26장), “만물은 무성하게 자라지만 결국 그 뿌리로 돌아간다. 이를 고요함이라 하며, 제 본성으로의 회귀이다. 이것이 곧 도의 이치, ‘늘 그러함’(常)이다”(제16장)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다시 무극(無極)으로 되돌아가며, 질박한 통나무(樸)로 돌아간다”(제28장)고 하여, 모든 사물은 극에 이르면 다시 본원으로 돌아가는 순환 원리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돌아감은 도의 움직임이다”(제40장)라고 단언합니다.

 

2) 장자 역시 도로부터 생성된 만물은 반드시 도로 회귀한다고 하였습니다. “만물은 번성하면 다시 그 근본으로 되돌아간다”(『장자』 「재유」), “만물은 모두 변화의 기틀로부터 생겨났으며, 결국 변화의 기틀로 되돌아간다”(「지락」)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도는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지만, 물건은 생겨남과 사라짐이 있다. 이러한 생성과 소멸은 흐르는 물결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추수」)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만물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기에서 나와 다시 하나의 기로 돌아가는 존재이며, 인간과 짐승도 다르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천지 만물은 나와 함께 생성되었으며, 만물은 나와 하나이다”(「제물론」)라고 하여 존재의 통일성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