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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도가철학 수기론(1)

by 온리나1115 2025. 4. 29.

도가철학 수기론(1)

 

목차

  • 도를 체득하다
  • 지식을 버리다
  • 욕망을 끊다

 

도를 체득함

불교, 기독교, 플라톤 철학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을 고통으로 간주하고, 이른바 저승, 즉 내세나 천국 혹은 영혼의 세계 같은 초월적 차원을 인정하는 것과는 달리, 도가는 이 세상 이외의 또 다른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비록 이 세상에서의 삶이 괴로움을 수반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하면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부귀나 명예, 지위, 권력과 같은 외면적인 물질적 조건에서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얻기 위해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분주히 움직이며, 피로를 흘려가며 일하고 다투다가 결국 몸과 마음을 소모하며 우환(憂患)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외적인 물질적 가치들을 내려놓고, 삶의 본성에 따라 무위자연하게 살아가며,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즐거움을 추구해야 비로소 참된 삶의 가치를 갖춘 채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가(道家)는 이처럼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다섯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도를 깨달아 체득할 것, 둘째, 일상적인 지식을 버릴 것, 셋째, 욕망을 끊을 것, 넷째,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할 것, 다섯째,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통해 소요무애(逍遙無碍)의 경지에 이를 것. 이는 곧 자기 수양(修己)을 통한 행복의 실천적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인간이 우환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도와 이법(理法)을 깨달아 체득하고, 그에 따라 욕망을 버리고 무위자연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도는 존재의 근원이자 만물의 원리이며, 삶의 실천적 준칙이기도 합니다. 그는 "도는 만물의 깊은 근본이니, 선한 이는 그것을 보배로 삼고, 선하지 못한 이도 간직해야 한다"(『노자』)고 하였으며, "성인은 하나 됨을 꿰뚫어 천하의 귀감이 된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지혜로운 이는 도를 들으면 힘써 실천하려 하고, 평범한 이는 반신반의하며, 어리석은 이는 듣고 비웃는다"라고 하였고, "본래의 근원을 지킬 줄 알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또 도를 체득한다는 것은 고요하고 텅 빈 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수컷의 본질을 알되 암컷의 마음을 유지하면 천하의 골짜기처럼 될 것이다. 천하의 골짜기처럼 되면 변하지 않는 덕을 얻게 될 것이며, 덕이 완성되면 다시 갓난아이의 순수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밥을 줄 알면서도 어둠을 지키면 천하 만민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천하 만민의 본보기가 되면 변함없는 덕을 얻고, 다시 무곡(無谷)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영예를 누릴 줄 알면서도 굴욕을 감수할 줄 안다면 천하의 골짜기처럼 될 것이다. 골짜기처럼 된다면 변함없는 덕이 풍성해져 다시 갓난아이와 같은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장자는 인간이 만물과 마찬가지로 도로부터 생성되었기에 본래는 순박한 성정을 지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외부 세계와 접촉하면서 욕망을 품게 되었고, 그 결과 인의(仁義)에 얽매여 본성을 잃고 스스로를 해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명예, 이익, 호불호, 시비, 선악, 생사 등의 외부 가치에 집착하여 성심(性心)에 끌리게 되어 순박한 본성을 상실하고 스스로를 해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부 사물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천성(天性)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삶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방법은 욕심을 끌어내어 몸에 들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경상초』)라고 하였으며, "올바른 경지에 이른 이는 성명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변무』)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도를 체득한 사람은 천하의 군자들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된다"(『지락유』)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장자는 "지혜를 소유하려 하지 말고, 무궁한 도를 철저히 깨달아 조짐 없는 경지에 머물러라"(『응제왕』)고 권하였으며, "천지의 덕을 명확히 체득하는 것을 '위대한 근본(太素)' 또는 '위대한 마루(太樞)'라고 부른다. 이는 곧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천상의 즐거움(天樂)'이라 칭한다"(『천도』)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도와 덕을 체득한다는 것은 결국 만물의 이법을 꿰뚫어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인이란 천지의 아름다움을 근원으로 삼고, 만물의 이치를 통달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덕망 있는 이는 일부러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위대한 성인은 억지로 무엇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천지의 이치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지락유』)라고 하였습니다.

 

지식을 버림

도가(道家)는 일상생활에서 얻는 지식이나 세속적 지혜가 오히려 인간을 혼란과 갈등 속으로 빠뜨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지식은 시비를 가르고 분별심을 부추겨, 오히려 도를 깨닫는 데 장애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세속적 지식과 분별을 내려놓지 않으면 진정한 도를 체득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종종 부귀나 명예, 지위, 권력과 같은 외적인 가치를 쫓으며 행복을 얻으려 하지만, 이러한 추구는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가에서는 이러한 일상적 지식을 버림으로써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노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지식을 부정하고, 이를 버릴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언제나 백성들이 분주하지 않도록 하고, 욕망을 줄이게 하라. 지혜롭게 자처하는 자들이 감히 일부러 행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노자』3장)고 하였으며, "지혜가 출현하고 나서야 큰 거짓이 생겼다"(18장)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들의 이익은 백배로 늘어날 것이다"(19장)라고 하여, 세속적 지혜를 부정하였습니다.

 

노자는 또한 "배우기를 멈추면 근심이 사라진다"라고 말하며, "배움은 날마다 덧붙이게 되지만, 도를 실천하면 날마다 덜어지게 된다"(48장)고 하였습니다.
즉, 지식을 쌓으면 오히려 할 일이 많아지고 근심도 늘어나지만, 도를 따르게 되면 마음이 점점 가벼워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참되게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상적으로 말하는 앎은 진정한 도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얄팍하고 헛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장자 역시 세속적 지식의 한계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아는 것이란 얕고 가벼운 것이며, 모르는 것이야말로 깊고 투명한 것이다"(『지락유』)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옛날 사람들은 어지럽고 혼미한 상태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담백하고 고요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비록 지식이 있었지만, 그것을 쓸 일이 없었다"(『천하』)고 말하며, 지식을 추구하는 태도를 경계하였습니다.

장자는 또한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제거해야 비로소 큰 도둑이 사라질 것이다"(『겸애』)라고 하였으며, "명예는 사람을 얽어매고, 지혜는 다툼의 도구가 된다. 이러한 것들은 세상에 해악을 퍼뜨리는 흉기가 되므로 경계해야 한다"(『인간세』)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기술이나 기계를 다루게 되면 기계에 대한 마음(機心)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본래의 순박한 본성을 잃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순수한 마음을 잃으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없으며, 이는 곧 도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장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은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걸어가면서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몸은 마른 가지 같고, 마음은 불탄 재처럼 고요하다. 이런 이들에게는 재난이 닥칠 리 없고, 불행이 찾아오지도 않는다"(『경상초』).

이처럼 장자는 얄팍한 지식과 세속적 분별을 버려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욕망을 버림

도가에서는 인간의 삶에 불행과 고통을 불러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욕망을 지목합니다.
다만, 욕망을 억제하는 방식이나 정도에 대해서는 사상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노자는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면서도, 모든 욕망을 근절해야 한다고까지는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부추기는 대상을 드러내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을 것이다"(『노자』)라고 하였고, "재물을 가득 채우는 것은 도리어 화를 부른다. 금은보화가 집안에 가득하면 그것을 지키기 어려우며"라고 경고합니다.


또한 "성인은 극심한 것을 버리고, 사치를 버리고, 지나침을 멀리한다"고 하여 절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노자는 특히 욕심과 사사로운 마음을 비우면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천지는 오래 지속된다. 천지가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를 낮추기에 오히려 윗자리에 서게 되고, 스스로를 버리기에 도리어 자기 자신을 얻게 된다. 이는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로움을 피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욕심보다 더 큰 재앙은 없으며,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고 말합니다.

양주(楊朱)는 인간이 불필요한 욕망에 얽매여 자연스러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평온히 살지 못하는 이유는 네 가지이다. 그것은 수명, 명예, 지위, 재물에 대한 집착이다. 이 네 가지에 사로잡힌 사람은 귀신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며, 권력을 두려워하고, 형벌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이들을 자연의 이치에서 도망친 자(逃於自然)라고 부른다"(『열자·탕문편』)고 말합니다.

 

양주는 또한 사람들이 헛된 명예를 좇고 죽은 후의 영광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한다고 비판합니다.
"허망한 명예를 쫓아 죽음 뒤의 이름을 얻으려 하면서, 매일매일 쓸데없는 걱정에 빠져 살며, 참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죄인처럼 억눌린 삶을 살아간다"라고 하였습니다.

 

장자는 인간 본성은 원래 욕망이 없는 소박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부 사물에 접촉함으로써 욕망이 생기고, 그로 인해 본성을 잃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모두가 욕망이 없을 때, 그것을 소박함이라 부른다. 소박함으로 인해 백성의 본성이 온전하게 보존된다"(『대마제』)고 하였으며, "임금이 욕망을 채우면 본성을 해치게 된다"(『서무귀』)고 경고합니다.

장자는 또한 "욕심이 많은 이는 타고난 기질이 천박해진다"(『대종사』)고 하였고, "외부 사물을 소중히 여기면 마음은 점점 좁아진다"(『발생』)고 하였습니다.
외부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본래 순수한 마음을 잃고, 결국 스스로를 해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분별과 욕망을 비워야 본래의 순박한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합니다.